슬슬...이랄까 의욕은 있는 편인데 시간이 나질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하는 건 절대로 아니니 혹여나 넘겨짚으시면 곤란.

올해 시험도 결국은 예행연습이 될 거 같군요.
애초에 휴학하고 공부를 할 리가 없는 거였지요. 으음.



그렇긴 한데, 인생을 낭비한다는 건 즐거운 일 아닐까요.
(많이 사치스럽긴 하지만)
아무튼 요즘 사는 게 좀 즐거워요. 뻔뻔할 정도로. 그래서 시간은 없지만.

(혹여라도 기대하는 분께는 마음 깊이 사과의 말씀을)
2005/02/15 23:21 2005/02/15 23:21
이것저것 꽤 많이 쓰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모두 중지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개점휴업이예요.

굳이 시간이 없는 건 아닌데, 시간이 없군요. 하핫.
마음이 바쁘니 진정되면 다시 잡글을 써 봐야겠습니다그려.
2005/02/02 11:45 2005/02/02 11:45
계속해서, 예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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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상관없는 이야기들
2. 내가 싫어하는 것



"좋아, 귓구멍 씻고 잘 들어두라고. 이 기회에 확실히 말해두도록 하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무책임이야. 무책임한 거야!"

꽝. 단지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만든 조악한 품질의 나무 탁자가 비명을 토해냈다. 아니다.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날거라는 예감이 무의식 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탁자가 없었으면, 저 비명을 지르게 될 대상이 무엇이 되었겠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인정머리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고명하신 '빛의 아이' 께서는 주먹 아래에서 애처롭게 울부짖고 있는 탁자의 안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다시 주먹을 들어 탁자를 두들겨대며 거칠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애초에 인정머리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단 말이지. 당신 산 타봤어? 노숙은 해 봤고? 얼어죽을 모닥불이란 게 그렇게 낭만적인 줄 알아? 당신이 무책임하게 쓰다가 내던진 세계 덕분에 나는 벌써 7년째 빌어먹을 화산 기슭에서 한치도 못 움직이는 채로 똑같은 곳에서 맨날 노숙하고 있다구!"

오염을 모르는 청명한 공기의 숲 속, 그 가운데 자리한 뜬금없는데다가 인위적인 공터에 놓인 역시나 뜬금없는 탁자. 그리고 그 앞에 마주앉은 채로 서로 노려보고 있는 두 사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 명은 상대를 노려보고 있지만 그 상대는 어정쩡하게 곁눈질을 하면서 시선을 피하려 하고 있다. 새소리도 없이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대답을 요구하는 무거운 공기에 눌려 맞은 편에서 가느다란 말소리가 새어나왔다. 애처로울 정도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놓은 대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 저기... 산이라면 타 본적 있는데..."

"어디서 말을 돌려! 지금 그 따위 한가로운 잡담이나 나누자는 게 아니잖아. 정말 계속 이런 식으로 성질만 긁어댈 셈이야? 봐주는 데도 한계가 있는 법이라는 걸 제발 깨달아 주는 것이 어떨까?"

자기가 물어 본 주제에. 볼멘소리를 속으로 씹어삼키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는 이어졌다.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나도 먹고 살기는 해야 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말이야, 생각 좀 해보자구. 내가 이 짓을 한다고 해서 밥이 나와, 쌀이 나와? 그러니까 나도 글 쓰는 데 좀 소홀해진다고 해서 굳이 탓할 것 까지는 없는 게 아닐까? 어차피 나에게는 단순한 취미활동이고 말이지"

계속되어 가면서 모종의 활기를 찾아 마치 홈쇼핑 쇼호스트같은 확신을 갖기 시작하던 말소리는 다시금 시작된 탁자의 비명에 의해 중단되었다. 꽝, 꽝.

"그러니까! 그 따위! 사고방식이! 싫다고! 했지! 그게 바로 무책임한 거라고! 오오, 보라, 그는 이 내가 단순히 심심풀이 땅콩이라 말한다! 네 녀석은 단순히 취미 생활의 일환으로 잡문 나부랭이를 쓸 뿐인 거겠지만, 그 바람에 급조된 세계와 그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은, 아니, 굳이 '사람들'만일 건 없지만 아무튼, 어쩌라는 거지?"

주먹질 한 번에 부스러진 39800원짜리 확신을 머릿속으로 주워담던 그는 갑작스런 의문형 종결에 몸을 떨며 그만 또다시 대답을 해 버리고 말았다.

"아니, 그래도 너는 운이 좋아. 그러니까 환경 테러리스트이자 지능형 이끼의 등쌀에 시달려 생업인 낚시도 못하고 꼼짝없이 굶주리고 있는 마을도 있다고. 그런 경우에 비하면..."

"그래? 그러니까 당신은 그런 짓까지 하신 적이 있는 거구만? 오오! 보라! 이 자는 입으로는 거짓을 외치고 손끝으로는 재앙을 낳는구나! 도대체가 당신은 글을 쓴다는 게 뭔지에 대한 자각 자체가 없어!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책임 지기. 이런 기본 중에 기본이 없다 이 말이야!"

분노라고 하는 것은 어떤 국면을 넘어서게 되면 제어할 길이 없어진다. 그 상황에서는 어떠한 변명 내지 설명도 분노를 더욱 끓어오르게 만들 뿐이다. 왜, 설득은 논리가 아니라 감성의 문제라고 하지 않는가. 바로 지금이 그런 상황이라고 판단한 그는 적당히 듣는 척만 하면서 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왜 이렇게 웰빙이라는 이름을 단 엽기식품이 많을까. 꽁치 통조림에는 과연 발암물질이 없을까. 왜 3분 쇠고기카레는 다른 3분요리보다 파격적으로 싼 걸까. 등등.

"...그러니까 애초에 이건 말이 안 돼. 왜 너는 방 안에 들어앉아서 맥주나 홀짝거리면서 펜대 굴리고 앉아있고 나는 입 달린 칼이 내뱉는 개소리나 들어야 되는 거지? 너는 에어콘을 틀고, 나는 등산을 하는 이런 상황이야말로 착취야. 이런 불평등한 계약, 아니, 계약이나 했어? 이렇게 일방적인..."

한 번 불붙은 분노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한 가지 다행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불붙은 분노의 표출' 이라는 작용이 대개 '주위 세계에 대한 관심의 격감' 이라는 부작용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하나 있다. 관심은 줄지만 분노는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퍼져나가고. 그 결과로 분노는 쪼잔하게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하 불타오르게 된다. 그러므로 맞은 편에 앉은 (전) 분노의 상대방은 이제 굳이 듣는 척을 해 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전 세계가 나의 분노를 받을진대 저깟 인간 하나쯤 듣든 말든 어이하리오.

그래서 그는 종이를 꺼내들고 메시지를 남길 여유마저 가질 수 있었던 것이겠다.

'그런데 말이야, 힐렐, 아무리 열받아도 나를 네 세계에까지 끌어들여서 마주앉혀놓고 화풀이를 하는 건 좀 반칙 아니야?'

나중에 확인하고 실컷 열이나 받으시게나. 중얼거리면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2005/01/23 00:17 2005/01/23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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